일본유학과 주인장 (1)


 블로그가 많이 휑해지고 있군요. 원인이야 당연히 주인장의 게으름입니다. 오늘은 해외 유학생활의 서바이벌...은 아니고. 그냥 사는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합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한 내용이지만 결코 이 블로그 주인은 시인이라던가 문학가를 지망하지 않는 고로 대충 교양 없는 글로 가봅세다. 

 오늘 문득 기장(통장정리)를 하다가 들어온 장학금 횟수를 보니 이제 이곳에서 장학금을 받는 일은 세 번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제 돌아갈 날이 세 달 (정확히 말해 두달하고 조금 더)남았다는 이야기겠지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을 해서 어느 정도 돈도 벌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취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한국이랑 다를바가 없군요. 언어가 일본어로 스위칭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벌써 여기서 지낸 지 8개월이 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면 심각한 척 해서 방황하는 20세기의 청소년처럼 유학생활을 되돌아 보고 한번 진지한 척 폼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사실 뭘해도 주접이지만
 
좀 멋있는 말로 타향 생활(...)을 하다보면 확실히 자기 나라가 그리워지는 때가 많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 블로그에서 이전에 주접대풍년의 포스팅이었던 삼각김밥정도가 있겠군요.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러한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데가 바로 옆나라인 일본에 없을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8개월 살았는데 모를리도 없구요.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수는 중국의 뒤를 이어 2위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이웃 나라이니, 자의이든 타의이든 이 곳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이 섬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수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겠지요. 그러한 연유로 이 나라에도 소위 코리아타운이란 데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JR 신오오쿠보(新大久保)역 근처가 되겠네요. CA의 "서울특별시 나성구"정도는 아니지만서도, 가면 (삼각김밥은 없지만) 된장찌개라던가 삼겹살에 쐬주한잔이라던가 비오는날 파전에 동동주 한사발이라던가... 꽤나 한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째 다 술과 그 친구들이지만 그러려니 넘어갑시다)

 이 블로그에서 꽤 많은 횟수로 삼각김밥이니 짜파게티니 안습과 주접의 대풍년이 이어지고 있고, 한국에서 걸려 오는 전화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징징대기는 하지만, 사실 지난 8개월간 JR신오쿠보역에 내린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한국음식을 매우 싫어한다던가, 일본 내에서 로컬화된 한국음식의 맛이 8월의 음식쓰레기같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때려죽여도 한국과의 접촉을 끊자"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입니다요. 왜? 귀화 밑작업이라도 하려고? (...) 하지만 국방부가 날 부르고 있기도 한데다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주인장도 맘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좋아합니다. 물론 대단히 뜨거운 가슴으로 조국을 위해 이 한 목숨 초개같이... 같은 패트리어트 마인드는 없으니 그야말로 "그냥 오래 살았고 또 편하니까" 우리나라가 좋다는 싱겁밍밍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유학생활에 있어서 신조(信条)...라고 하면 실미도스러운 표현이고, 대충 방향성이라고 하자면, 나름대로 외국에 온 이상 "이 나라 사람에 최대한 가깝게"살다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학의 목적이 "어학"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곤란합니다. 그건 (효율성의 문제를 차치하면) 자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거든요. 자신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서 회화 연습을 할만한 네이티브를 찾거나 하다못해 네이티브 강사가 있는 학원에 가서 매일 공부하는 비용이 최소한 국경넘어 바다건너 외국에서 생활하는것보다는 비용측면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싸게 먹힙니다. 다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외국 그 자체를 카피뜨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딘가에 일본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법규・언어는 물론 행정 시스템이나 대중교통 등의 사회적 인프라, 그리고 諸생활양식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는 특구가 존재한다면 좀 가르쳐 주세요. 유학생활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싸게 먹히면 당장 유학생활 엎고 달려갑니다. 가면 데이트도 맘껏 하고 마비노기(...)도 랙없이 굴러가는데다가 때때로 삼각김밥이고 삼겹살에 쐬주고 맘껏 먹을수 있는데 내가 왜 이 먼데서 허벅지를 찔러가며 요시규*1나 씹고 있겠습니까. 사실 신오쿠보의 한국음식은 비싸기도 하지만 이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블로그에서 그지랄(...)을 하면서도 한번도 찾아가 보지 않은 것이지요.


 결국 위의 주저리주저리를 허리 뚝잘라 요약하면 「 이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나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극히 단순한 예를 들어서, "蛍の光*2"라는 노래가 가게 내부에 흘러나온다면 그걸 듣고 "폐점시간이니 언능 꺼져"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common sense를 가지고 싶다는 것입니다요. 다른 예를 들자면 "아, 이번 수능 망쳤어, 종로학원*3 가게 생겼네"라고 할때, "학생이 반드시 수많은 학원 중 종로학원에 간다"가 아니라, "종로학원 = 대입재수학원의 대명사"처럼 쓰였다는 것까지 알 수 있어야 그게 일반적인 상식 아니겠습니까. 기왕에 이 나라에 왔으니까 이 나라에서밖에 익힐 수 없는 것을 얻어 돌아가자는것이 되겠심다. 어학과 유학의 차이점이라는것은 그런데서 발견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편의점의 타치요미*4(立ち読み)라던가, 와리캉*5(割り勘)이라던가 - 자국과는 다른 생활의 흔적을 덕지덕지 뭍히고서 돌아온다면 비로소 어학을 넘어 유학이라는 것이 그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샐러리맨은 물론 초등학생도 인신매매시장도 차별화 전략을 꾀한다는데 명색이 유학도 비슷해 보이는 어학이랑 차별화를 좀 꾀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연유로 나의 행동양식이라던가 언어생활이 다소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하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뇨, 도리어 기쁜 일이라고 봐요. 정해 놓은 목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일본인이 되어버리면... 이라는 우려인지 핀잔인지가 무성하지만,  이곳에서는 적응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한들, 돌아가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생활양식에 돌아올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지요. 엄청나게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경해서, 어떻게든 한국에 살면서 일본사람 놀이를 하려는 개그맨(우먼)이 아닌이상, 살아온 햇수의 차이가 현재시점에서 20대 1을 넘고 있는데다가 돌아가면 20이 더 위로 올라갈텐데 결과는 뻔하죠.


나중에 시간나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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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시규 - 요시노야(吉野家) 규동(牛丼 / 소고기덮밥)의 약어(속어?). 싸고 간편함을 모토로 하는 덮밥집 체인 요시노야의 定番(대표 메뉴). 점내에 들어가 나미(並み, 1인분 보통)라는 두 글자만 하면 30초에서 1분 내외에 나오는 데다가 가격도 파격적인 380엔. 돈 없는 유학생에게는 (유학 직후 6개월 정도는) 매우 고마운 존재. (그 이후로는 질려버린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 하지만 돈없고 배고프면 먹어야지 어쩌겠어 곱배기(大盛り)/왕 곱배기(特盛り)도 있다.  메뉴는 이쪽을 클릭 (요시노야 직영체인 홈페이지) 

*2蛍の光(반딧불빛) -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역(訳). 주로 폐점시간을 알리는 의미로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우리로 치면(요즘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정도가 됩니다. 위키 링크는 여기를 클릭(위키재팬) / 들어보기

*3종로학원 - 일본에서는 통칭 예비학교(予備校). 재수생뿐만 아니라 현역입시준비생도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름난 예비학교로서 요제미(代ゼミ, 요요기 세미나代々木ゼミナール의 약어)라던가 와세다 아카데미 등이 있다.

*4타치요미(立ち読み)- 말 그대로 서서 읽는다는 것. 어떤 서점에라도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매주/격주/월간으로 잡지가 나오고, 그것이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는데다가 특별히 열어보지 못하도록 비닐패키징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성년 대상의 성인잡지의 경우 열어볼 수 없게 되어 있다) 편의점에 들어와 서서 만화잡지 등을 읽는 행위를 말한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로서는 꽤나 신경 쓰이는 행위. 일반적으로 각 편의점에서는 타치요미를 삼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글을 붙이고는 있으나 잘 지켜지지는 않는 듯 하다.

*5와리캉(割り勘) - 요는 나눠서(割) 계산(勘定)한다는 뜻. 식당에 간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켰다면, 각자 자신이 먹은 음식의 가격을 따로따로 계산하는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를 개인별로 분리하지 못할때는 보통 총금액을 나눠서 낸다) 예를 들어, 10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병으로 된 2,400엔짜리 소주를 주문하여 4명만 마셨다면, 그 4명에 한해 600엔씩 갹출하여 내며 거기에 공통요금은 추가로 내게 된다. 물론 격의없는 친구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by 하츠나기 | 2007/05/22 14:19 | SA-Tokyo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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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케 at 2007/05/22 17:18
도움이 될거 같네요.
나름 고찰..이라고나 할까요. 쉽게 적응하고 쉽게 잊어버리는게 사실이기도 하니..
겨우 3박4일이었지만 태국에 다녀오면서 태국의 문화와 인사에 쉽게 익숙해지는
저를 발견하고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어요.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아, 그리고 바톤 받아주세요 +_+)
Commented by 하얀벚꽃 at 2007/05/22 18:34
그러고보니 벌써 2년이 넘어가는데도 그런 건 신경써본 적이 없군요..
아니, 이미 익숙해져서 다른 나라의 문화. 라는 걸 인식 못 하고 있는 것들도 있으려나요. -> X ... :D
Commented by 케이진 at 2007/05/22 19:21
글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보기가 힘들다[.]
Commented by 로릿치 at 2007/05/22 20:44
실제 웹상에서는 그런거 전혀 느낄 수 없고..... 그래도 개그맨인점은 인정해 줄게.
/ 음. 진지하게 말해서 개선이 될.....거 같지는 않아. 하도 뭉개지는걸 많이봐서.
Commented by 날림 at 2007/05/22 22:54
여기선 한국 음식 먹으려고 해도 못 구하는 곳이거늘! 감자탕 한 그릇 먹으러 5시간 차타고 한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곳에 살다보면 한국 음식에 환장하게 되우...OTL
Commented by Yuel at 2007/05/22 23:12
뭐지 한국에 있는데도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 학교 안에서의 식사란 정해져있.....아 알고있을 것도 같지만 상경대 본관 지하에 매점+식당이 생겼어=ㅂ=
교환학생관(?)이 내년의 생활을 생각해보게 만드는구나;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어학만은 아닌거겠지. 멋진데..!
이미지 개선에 관한 설문 고민하다 ㅇ으로 한 표 찍고 갑니다. ...인데 운영 전략 아니었어?!
Commented by 魂보다熱血 at 2007/05/23 02:47
한자 못 읽겠어열.(...)
Commented by 묘우렌 at 2007/05/23 12:15
분위기 쇄신이라...
미캉의 이미지는 안습이라던가, 주접이랑은 거리가 먼것 같은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
Commented by vitriol2 at 2007/05/23 22:16
홍역 괜?
Commented by 쿠랅구 at 2007/05/24 01:28
아니 홍역인가여!
Commented by 이프 at 2007/05/24 21:17
한국 내에서도 전혀 다른 곳이 많은데 일본 도전은 무리일 것 같아요OTL
(일단 언어가 통해야지;;) 사실 여행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은데 막상! 못하겠는거 있죠.
Commented by 나유키 at 2007/06/04 14:57
국방부가 만만치않은 적이지...음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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